폭풍전야

코레일 이사회의 수서발KTX 자회사 설립으로 촉발된 철도노조의 파업은 정부의 강경대응 노선 확정으로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집권 초반부터 윤창중을 비롯한 각 종 악재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가,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으로 인해 정권의 정당성 마져 흔들리는 상황에서, 1970년대의 인물들로 구성된 박근혜 정부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대처나 레이건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다른 점도 많다.

1. 상대가 다르다.
레이건의 상대는 항공노조였고, 대처의 상대는 잉글랜드 북부의 광부들이었다. 즉, 시민들의 일상과 큰 상관이 없었다. 둘 다 언론과 시민들에게 상대적으로 고립된체로 공격을 받고 분쇄되었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다르다. 수도 서울, 수도권 2천만명의 출퇴근을 책임지고 있다. 그들의 파업은 항공노조나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 광부들의 파업과 영향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2. 장수가 글렀다.
국토부나 정부가 민영화를 처음부터 목적으로 했다면 노조의 반발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코레일 사장으로 과거에 민영화를 반대한다고 공공연하게 천명했던 최연혜를 선임한 것은 큰 실수다. 파업은 언제나 여론전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여론전에서는 어쨌든 논리가 중요한데 민영화를 추진하는 주체의 사장이 민영화를 반대했던 사람이란 것은 지금 보듯이 큰 타격일 수 밖에 없다.

3. 이슈가 정부에 불리하다.
30년 전 쯤이나, 10년 전 쯤에 '민영화' 이슈로 싸웠다면 정부가 쉽게 이겼을 지도 모른다. 시장 만능주의가 아직 세상을 제패하고 있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무현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하던 시절과 지금은 천지차이다. 민영화한다고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왠만하면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노조는 그 '민영화' 반대의 선두에 서 있는 존재로 자신들을 설정해 놓는데 아직까지는 성공하고 있다. 

4. 시기가 글렀다.
이 이슈가 민주노총 지도부 공백이 심각하던 작년이나 올해초에 터졌다면 정부에게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오랜 공백을 끝내고 민주노총에는 새 지도부가 들어섰다. 대오를 정비한 민주노총 구성원들은 지도부에 기대하는 바도 크고, 그래서 지도부도 이런 상황에서 쉽게 물러날 수 없을 것이다. 

5. 정권이 사방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정권은 이미 전교조와의 싸움에서 법원으로 부터 따귀를 맞았다. 최종 결정은 멀었지만 별로 기운나는 상황은 아니다. 더구나, 전교조나 공공노조들의 전의를 불태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공공노조인 철도노조를 때리고 있으니 다른 공공노조들의 생각이 어떻겠는가. 공공노조들은 대개 돈과 자원이 풍부하다. 이런 공공노조들이 연대하게 되면 철도노조는 다른 파업들 보다는 쉽게 파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의료민영화 이슈까지 터졌다.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가혹하다. 수입이 단절됨은 물론 형사처벌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파업이든 간에 한국에서는 노조의 승리를 점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철도노조가 이기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정권이 승리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정권이 승리한다고 해도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이 될 것이며, 아마도, 임진왜란을 지원했던 명나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번 정권은 철도노조 뿐만이 아니라 민주당과 '국정원 이슈'로 정권 정당성을 놓고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도 철도노조와의 싸움과 마찬가지로 힘에 부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슈퍼파워도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시대에, 지극히 무능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정권이 그런 싸움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by corwin | 2013/12/17 09:33 | 단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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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13/12/17 13:32
수도권 뿐이 아니죠. 지하철은 부산 대구 대전 광주에도 있는지라...
Commented by 로보 at 2013/12/17 16:53
어렵긴 하지만 공기업개혁에 승리하면 역사에 남을 것임. 민주당은 걱정안해도 됨. 윗동네가 다 막아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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