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햇볕 정책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실, 햇볕 정책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연평도 보다 2006년의 북한 핵실험 때 더 심하게 제기되는게 맞다고 보지만, 머나먼 북쪽의 지하에서 핵실험을 한 것은 아무래도 실제로 사람이 죽은 것보다는 영향이 적을 수 밖에 없겠지. 그것이 만약 실패한 정책이라면, 비판을 받는게 맞겠지. 아니, 성공한 정책도 비판 받을 점이 있다면 비판 받아야 하는 건데, 실패했다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북한의 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늘 떠올려 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북한의 핵과 관련해서 남한 정부의 정책이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과연 어느 부분인가 하는 점이다.

1994년의 1차 핵위기를 떠올려 보자. 간단히 정리하면, 1차 핵위기를 해결한 건 김영삼 정부가 아니었다. 아니, 그리고, 애초에 북한이 남한을 노리고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거든. 1990년대 초. 소비에트가 분해되고, 이라크 침공이 성공리에 끝나면서, 미국의 제국으로써의 위상이 최정점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북한의 기득권은 어떻게든 생존의 방법을 마련했어야 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중국처럼 개방을 시작하면서 세계의 인정을 받는다면 모두 다 해피하겠지만, 그건 중국의 이야기고... 개방 잘못했다가는 기득권이 송두리채 날아가는 북한으로써는 그런 해피한 방법을 선택할 수 없었고, 그래서, 택한 것이 핵이다. 그리고, 미국은 역시, "핵"에 반응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 내에서는 "이 새끼들을 콱 조져버려..."하면서 계산도 좀 때려봤지만, 개전 하루 이틀 안에 백만명의 사상자가 나올거라는 결과가 나오자, 두 말 없이 협상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94년의 제네바 협정이다. 우리도 잘 아는 "북한에 경수로 심어주기. 그것도 두개나..."하는 계획이 만들어졌고, 돈은 주로 미국의 꼬붕인 일본(;;;)과 한국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경수로 심어줄 동안은 미국이 북한에 "중유"를 보내주기로 했다.

자, 여기서 생각해 보자. 98년에 집권을 시작한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 이전에 미국은 이미 북한에 햇볕 정책을 시전하고 있었다. 햇볕 정책이라고 하긴 좀 거시기 하다면, 그냥, 돈을 주면서 평화를 샀다고 하자. 이 때의 주체는 누구인가. 미국이다. 남한 정부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남한 정부의 자국내 입장보다는 북한의 핵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이다. 

2006년의 북한 핵실험을 생각해본다면, 클린턴 정부의 이 정책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하면 쉽겠지. 그런데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왜 이 정책은 실패했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경수로 지어주기로 한게 계획대로 진행이 안 됐다. 원래는 2000년 초까지 완공 되기로 했던게, 첫삽을 뜬게 2000년 초였다. 즉, 미국, 일본, 한국은 1994년부터 거의 6년간 협정을 통해 지어주기로 했던 경수로를 지어주지 않았다. 
2. 그런 상황에서 새로 들어선 부시 정부가 클린턴과 북한이 만든 협정을 개무시 했다. 아니, 더 간단히 말하자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그냥 무시했다. 이유는 아마도 석유가 안나서;;;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핵을 포기하고 경수로 기다렸으나... 지어주지도 않지... 새로 들어온 정부는 북한을 개무시하지... (물론,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협정에 찬성하는 파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것을 예상하면서 비밀리에 핵프로그램을 진행시켰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부시 행정부 쪽에 계속 이야기를 해보자고 요청했으나, 계속 개무시를 당했고... 결국, 핵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 기간 동안 북한은 맘놓고 핵을 비밀리에 진행시켰고, 그것이 2006년의 핵 실험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 개발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전략의 일환이지, 그것을 사용하자는 입장이 아니다. 북한의 핵에 의한 충격, 그리고, 존나 욕만 먹은 부시로써 외교 치적이라도 세워보려는 입장이 더해져,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북한과의 대화가 다시 진행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부시 행정부 내의 매파(즉, 네오콘)의 방해로 인해 대화가 중단되고는 하고..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은 이제, 다음 턴을 기대한다.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 하지만, 얄궂게도 미제국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서, 북한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북한은 아예 미국의 무관심에 지쳐서, 아예, "우리 원심분리기 가지고 있다!"라고 선언을 해버린다. 한 때 그렇게도 미정보기관들이 알고 싶어했던 그 정보를 그냥 개방해 버린 것이다. 이 모든 수작의 목적은 단 하나다.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 정상화. 미국이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인정해주고, 모든 제재를 풀어주고, 기득권 세력을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도 남한과의 관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 그럼 연평도는 왜 터졌나. 나도 모르겠다. 연평도는 북한이 그 동안 행해온 미국에 대한 구애 작업의 일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단순히 김정은 승계 작업을 위한 일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미국이 돌아보지 않는 햇볕 정책이란 건 제한된 효과 밖에 없는 것이고, 미국이 돌아보지 않는 강경 정책이란 것도 역시 제한된 효과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돌아보지도 않는데(즉, 부시 정부 시절), 남한이 북한을 살갑게 대한다고 해서 북한이 결국 착해질 수는 없는 것이고, 미국이 돌아보지도 않는데, 남한 혼자 북한에게 강경하게 나가겠다고 해서 미국 허락도 없이 북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지원이 존재하는 한 북한이 붕괴할 수도 없는 일이고. 

즉, 남한의 햇볕정책과 혹은 강경정책 모두가 북한의 실질적 변화 보다는 일시적인 분위기 조성과 국내 정치에 더 유용한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적어도 북한의 전쟁 위협을 잊고 살았다면, 햇볕 정책은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게 내 생각이다. 중2병들은 돈으로 산 일시적인 평화는 의미가 없다고 떠들겠지만, 그건 당신들 만화 속 캐릭터들의 중2병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그런 중2병들에게 나 역시 중2병적인 반론을 피자면, 어차피 영원한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평화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되는거지. 

즉, 요약하면, 남한의 정책이 북한의 현재의 태도를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은 미제국의 지배 하에 놓인 20세기 후반의 정세에서 남한의 위상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그래도, 햇볕 정책으로 지난 10년간 평화로웠으니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거다. 어차피, 남북한의 중대한 진전은 중-미라는 양 강대국의 마음에 따라 결정될 테니까...  
by corwin | 2010/11/29 13:17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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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at 2010/11/30 08:05

제목 : 부시 시절의 대북정책의 실패
햇볕정책 Mike Chinoy가 낸 Meltdown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만, 책을 볼 여유가 없는 분들은, 그가 쓴 글 하나 정도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링크한다. 부시가 최근에 낸 자서전인 Decision Point에서, 부시는 자신의 강경노선이 북한으로 하여금 2007년의 핵포기(영변 핵시설 동결)를 이끌어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Mike Chinoy에 따르면 이는 그야말로 개소리... 그리고, 이 글http://38no......more

Commented by BigTrain at 2010/11/29 15:09
2차 핵위기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시고 계신데. ( http://world.kbs.co.kr/korean/news/special/nkorea_nuclear/faq_01.htm#8 )

1.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건 2002년입니다. 2006년에 뜬금없이 핵실험을 진행한 게 아니라요. 사실상 94년 제네바 핵합의 이후에도 은밀히 핵개발을 진행해왔다고 봐야 할 겁니다.

2. KEDO의 원전 공사 착공은 2000년이 아니라 97년입니다. 2002년까지 공정률 34.5% 상태에서 중지됐지요. (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091108002750&subctg1=&subctg2= ) 그리고, 원전 건설 완공 목표는 2000년이 아니라 2003년이었습니다.

제네바 핵합의는 북한의 핵포기라는 명확한 보상의 대가로 그에 해당하는 합당한 당근을 제시한 정책입니다. 마냥 "주다보면 변하겠지."라는 불투명한 희망을 목표로 하는 햇볓정책과 비교할 만한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리고 98~08년까지의 한반도가 평화로웠냐하면, 그도 아니죠. 두 차례의 서해교전, 한 차례의 핵실험, 그리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던 핵실험.

저도 대북한 정책에서 한국의 위치가 그닥 중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엔 동의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햇볓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결국 우리가 뭘 한다고 바뀔 게 없다면, 굳이 뭘 바칠 필요는 없으니까요.
Commented by corwin at 2010/11/29 15:50
1. 2차 핵위기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네오콘 및 보수 쪽의 해석과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있죠. 특히, 켈리가 북한의 "우리는 핵을 가지고 있을 자격이 있다."라고 주장한 것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로 해석했다는 논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북한이 94년 이후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했을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북한애들이 바보가 아닌데, 민주당 정권이 계속 되리라고 보지도 않았을테고... 나름의 보험을 들었겠죠(비밀 핵개발 프로그램).

하지만, 쟁점은 미국에게 2002년 당시 증거가 있었는가? 관련 서적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없었다가 정설입니다. CIA의 보고서는 자기들 내부에서도 의심을 받고는 했죠.

2. 2000년까지 완공이라는 것이 아니고, 2000년 초까지 완공이 목표였다는 것은 맞습니다. 제가 대충 휘갈기다가 그 부분은 오해를 하게끔 쓴게 맞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KEDO 일정이 여러가지 이유로 매우 심하게 연기 되었다는 겁니다. 관련 보고서는 지금 다른 컴에 있어서 찾는데로 링크해 드리지요.

98~08년 사이가 평화로웠냐에 대한 기준은 저와 님이 좀 다르신 것 같군요. 그 때는 지금처럼 전쟁인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게 왜 다른 건지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적어도 서울 불바다 론은 영삼이 시절 이후에 거의 15년 만에 다시 튀어나온 거니까요.

전 햇볕 정책을 통해 개성공단을 얻었고, 그리고, 잘 진행 됐다면 거기서 좀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궁지에 몰린 쥐를 궁지로 계속해서 몰 필요가 있을까하는 입장이라서요. 이런 입장은 두 가지 때문인데,

1. 저는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네오콘들과 보수들은 20년째 그 신앙을 유지 중이죠. 신앙이란게 오래 믿으면 진리가 되니까...
2. 한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해 볼 때, 그 정도 돈은 버려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실 버리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보험(물론, 확율은 매우 낮지만)이라고 생각도 하니까요.
Commented by corwin at 2010/11/29 16:07
http://www.peacemaking.co.kr/news/news/view.php?papercode=peace&newsno=1651&sectno=2&sectno2=0&pubno=
기사 하단에 상세한 일정이 나와 있는데(예전엔 KEDO 홈페이지에서 진행과정을 공개했었는데 지금은 잘 못찾겠더군요), 실제로는 저 보다 더 많은 사건들이 얽히면서 공사가 계속 연기 되어, 본공사 착공은 2000년에 겨우 시작됐죠. 2000년에 KEDO가 방북해서 본공사 착공을 축하하는 뭐 이런 걸 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Commented by corwin at 2010/11/29 16:14
2000년초->2000년대 초의 의미였습니다.
Commented by spic at 2010/11/29 20:39
다소 오독해서 빗나간 리플을 달고 말았군요.

그런데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해서 제네바 합의가 깨진 것이 미국 탓일까요? 무엇보다 북한이 스스로 선언했는데 미국이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가 의문이군요.

또한 켈리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한들, 핵을 가지고 있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제네바 합의를 깬 것이고 문제의 원인이 다른 데로 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sonnet님 글을 보면 당시 미국 측은 통역도 바꿔가고 여러 사람이 해당 번역에 동의한 것으로, 누군가 혼자 잘못 해석했다고 우겨보기엔 무리수가 있어 보이던데요.
Commented by corwin at 2010/11/29 23:53
제가 sonnet님 글을 잘 안봐서 어떤 글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주로 갈루치의 Going Critical http://www.amazon.com/Going-Critical-Korean-Nuclear-Crisis/dp/0815793863 과 Meltdown http://www.amazon.com/Meltdown-Inside-Korean-Nuclear-Crisis/dp/0312371535 을 참고했고, 그 해석은 예상하시겠지만,
1. 북-미간 협정을 높이 평가했던 쪽에서는, 켈리가 일부러 협정을 깨려고 갔다고 보고 있으며, 그 해석도 그 일환으로 보고 있고.
2. 북-미간 협정을 깨고 싶어한 쪽에서는, 켈리가 중도파니 그럴리 없다고 보고 있죠.
정확한 것은 직접 1차 자료를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corwin at 2010/11/30 00:13
참고로 이런 이야기도 있죠. "켈리, 나는 HEU라고 말한 적 없어..." http://www.vop.co.kr/A000000648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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