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강남에서 몇 시간, 거의 5시간 이상 시간을 떼워야 할 일이 생겨서 노트북과 책 그리고, 공부를 할 꺼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시간이 넉넉하니까, 책을 읽다가 지루하면, 공부도 하고, 공부도 하다가 지루하면 와우나 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스타벅스에선 인터넷이 제공되니까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가져온 책은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와 손톱. 자리를 잡고 책을 집어 든 순간 된장의 성소인 스타벅스에서 와우를 하겠다는 생각은 머리 속에서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 책에 빨려 들어 간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 기발한 트릭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다. 주인공의 회고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나는 이 작가가 구사하는 무심한듯 쉬크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에 완전히 항복하고 말았다. "살인은 외로운 작업이다.", "뜨거운 샤워가 많은 죄악을 씻어 내렸다-최소한 먼지, 검댕, 기름기의 죄악은 말이다." 같은. 멘탈리스트의 주인공인 패트릭 제인(사이먼 베이커)이 떠오르는 매력적인 주인공 때문이기도 하고, 아내의 유혹 같이 사건 전개가 빠르기도 한 것이 이 책의 매력이지만, 난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을 서술하는 벨린저의 간결한 문장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방황하는 칼날" 같은 책에서 조금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복수를 위한 살인은 정당한가?" 같은 명제 따위에 얽메이지 않는 시원함 점도 말이다. 복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고, 그래야 통쾌한 것이 아닌가. 이영도의 소설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하고 싶어서"라고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유일한 종족은 인간 뿐일 것이라고. 이 소설에는 최소한 그런 망설임은 없다.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고, 유쾌하게도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이런 "강한" 사람이 세상에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유쾌한 캐릭터가 좋다. 
by corwin | 2009/03/20 16:28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corwin.egloos.com/tb/409393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at 2009/04/05 00:36

... 얼마전에 스타벅스에서 또 다시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떼워야 할 일이 발생했다. 준비해둔 책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스타벅스의 지식인의 서재가 날 구원했다.(그 지식인이라는 것이 공병호였 ... more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