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결과를 들여다 볼 필요가 없는 거지같은 상들이 있는가 하면, 이번 미국의 에미상 시상식처럼 정말 볼만한 작품들에게 상을 주는 쓸모있는 상들도 있다. 글렌클로즈는 예전에 The Lion in Winter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보고 그 사악한 연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던지라, 그녀가 이번 에미상에서 Damages란 드라마로 여우주연상을 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드라마를 찾아 보았다. 결과는 감탄 또 감탄.
프로비셔라는 CEO가 저지른 회계부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된 5000명에 가까운 피고용자들이 그를 향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고, CEO들과의 재판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악명 높은 휴즈(글렌 클로즈)가 그들의 대리인으로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거기에, 젊은여변호사 엘렌이 엮이게 되면서 소송은 관련된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Damage를 끼치게 되지만 결국 재판에서는 승리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이야기만큼 간단한 구조는 아니다.
일단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악한 쪽은 분명히 부정을 저지르고 이를 소송인 매수, 증인 살인 등의 갖은 수단을 사용하여 덮으려고 하는 프로비셔측이지만, 이에 맞서는 휴즈쪽도 그다지 정의로와 보이진 않는다. 그들도 상대편을 속이기 위해서 하수인을 이용하여 폭력과 거짓말 그리고 협박을 일삼으며 어떤 때에는 자신의 증인들마저도 협박하고 속이기 일쑤다. 글렌 클로즈는 마치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에고와 야심이 하늘을 찌를듯한 휴즈의 차갑고도 냉정하면서도 비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보고 있자면 절로 욕이 나오면서, 어쩐지 프로비셔측이 오히려 순진해보이고 인간미가 넘치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더구나, 드라마는 프로비셔측의 인물 하나하나도, 마치 조지 RR 마틴이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자이메 라니스터를 속속들이 묘사하여 그를 미워하기 어렵게 만든 것처럼 세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느 한 쪽이 옳다고 선뜻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스릴러를 섞어서 마지막편까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한 원인 중 하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물들에 대해서 더도 덜도 아니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여 묘사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애정이 가는 인물이라면, 프로비셔측의 변호사 레이몬드다. 개인적 야심이나 호승심 때문에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휴즈보다 인간적인 애정 때문에 오랜 친구인 프로비셔를 떠나지 못하고, 또 그로인해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그가 오히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1기가 13편으로 끝나고 바로 몇 일전부터 2기가 시작되었는데 실시간으로 보다간 복장이 터질 것 같아서 아마 다 끝난 후 내년에나 2기를 봐야 될 듯 싶다. 하여간, 에미상 덕분에 좋은 드라마 하나 잘 봤고, 이제 다른 수상작인 Mad Men이나 찾아서 봐야겠다.
PS. Damages는 법정용어로 손해배상금 뭐 이런 뜻이라지만, 드라마 상에선 아마도 이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주변 인물들에게 발생한 수 많은 Damage를 뜻하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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