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조현

종이냅킨을 우아하게 접는 것만큼이나 상대에게 머플러를 세심하게 둘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하나의 상징은 하나의 행동으로 연결될 때 우아하게 빛난다. 마치 그것은 우리가 런던 뒷골목에서 삼 일을 굶고 있는 어린이를 보고 측은한 마음을 가지는 것과, 그 아이와 함께 검게 굳은 빵을 갈라 반 조각씩 나누어 먹는 것과는 천국과 연옥처럼 거리가 먼 것처럼 말이다. 내가 템즈강가에서 허리를 숙여 한 컵의 물을 뜨고 그리고 그 물이 새카맣게 죽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곧 이 한 컵의 물에 의해 세상의 모든 물이 죽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뜬 한 컵의 물이 생의 약동으로 펄떡인다면, 온 우주의 물 또한 그러하리라. 다야드밤(Dayadhvam, 공감하라), 우리의 문명은 상징보다는 항상 재생(再生)하는 행동에 의해 종말을 유예(猶豫)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종이냅킨 혹은 종이냅킨접기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라고 부른다.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조현 中에서

일독을 권합니다. ㅋ.

by corwin | 2008/03/20 14:52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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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 at 2008/03/21 12:01
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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