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가자." 참여정부가 출범초기에 외친 구호 중 하나다. 처음 말을 꺼낸 2003년 6월 이후로 노무현 대통령은 틈만 나면 '2만 달러 시대' 이야기를 꺼냈다. 노조를 비판할 때도 '2만 달러 시대의 선결 조건은 노사 화합'이라고 말했고, '2만 달러 시대를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 모두 혁신을 일상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각료들은 "2만 달러 시대로의 항해"와 같은 기고문을 언론에 쓰고 알렸다.
이 "2만 달러 운동"은 선진국 반열에 들기 위해 분배보다는 성장과 개발에, 노조 보다는 기업에 좀 더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출범 전만 해도 최소한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외쳤던 참여정부가 왜 이렇게 됐을까.
"2만 달러 운동"은 이광재씨의 작품인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아이디어는 삼성경제연구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경련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2003년 3월 25일(즉, 노무현 대통령이 그 구호를 꺼내들기 3개월 전) "새 정부와 함께 2만 달러 시대를 열어 갑시다."라는 현수막을 회관 건물 앞에 내걸었다. 그에 앞서 인수위에 "2만 달러 추진 위원회" 신설을 제의하기도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2만 달러 구호를 외치기 한 달전에 신경영 선언을 통해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선진국이 될 수도,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파이를 빨리 키워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돌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용적 충실성 없이 난데 없이 등장한 구태의연한 구호가 국가 발전의 핵심 비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05년 6월 국회 심포지엄에서 삼성경제연구소는 39명을 동원해 작성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잘사는 나라의 객관적 기준을 "국민소득 3만 달러"로 명시, 아직 달성하지 못했던 "2만덜러 시대" 목표를 은근슬쩍 "3만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3부 보수의 부상과 혁신 中에서.
경향 신문의 특별기획을 모아 출간된 이 책은 민주화 세력이 집권 이후 보인 무능력의 원인을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진보 그리고, 개혁(이 두 세력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세력 모두가 사회를 이끌어나갈 준비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국가의 비전과 정책을 정할 능력이 없어 한 기업의 사설 연구소에 맡겨 버린 것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수 많은 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수 많은 예들은 모두 우리에게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공부를 하자. 책을 읽자. 인류의 진보가 우리 손에 달려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사회의 진보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