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나는 부끄럽지 않다.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은 일이 있다. 아니, 아무도 관심 없진 않을 것이다. 이 일도 다른 일들처럼 유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까.

이라크 파병 연장안 통과

나는 대한민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다고 해서 유달리 부끄럽지는 않다. 내가 세금을 내고있고, 내 손으로 뽑은 정부지만, 나는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 선행을 하지 않는 정부를 가지고 있는 모든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자국의 정부를 부끄러워하는 만큼만 부끄러워한다.

호주는 동티모르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PKO를 파병했다. 하지만, 그 전에 20년 이상, 코 앞에서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인들을 20만명 이상 죽이고 있는 것을 모른척했다. 그들이 파병한 이유는 간단했다. 동티모르와 호주 사이에 유전이있고, 거기에 투자하고 있는 이상, 동티모르가 불안한 상황에 계속 놓여 있는 것은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인들을 학살해가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을 때야, 별 관심이 없었지만.

유럽인들이 미국을 비웃는다고 해도 그들이라고 나을 것은 별로 없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석유라고는 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들은 유고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물론, 20만명 이상이 죽어나가고 3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정도가 되어서야 그들은 움직였다. 어쨌든, 옆 집 일이었으니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기독교를 믿으면 사형당한다. 수십년동안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거기선, 정부에 대한 비판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언제 어디로 끌려가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과 서방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해서 이렇다할 비난을 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토록 줄기차게 이야기하면서. 사우디의 인권상황과 북한의 인권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찾아보면 끝도 없다. 나는 이 나라의 시민인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이나 유럽이나 미국이나 다들 마찬가지로 더럽고 치사한 나라일 뿐이며, 다 비슷비슷하게 비겁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특별히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이렇게 인터넷으로 놀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의 폭격에 부모가 죽은 아이들은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는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 부시를 뽑은 것은 미국인들이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해주면 좋겠지만, 시민들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고 모두 믿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니, 난 부끄럽지 않다. 군중속에 섞이면 용감해 지는게 아니다. 그냥 덜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대중의 장막을 두른다. 나는 정부를 대신 욕한다. 나는 파병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을 욕한다. 나는 그들 속에 숨는다. 대의정치라는 것은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부끄럽지 않다.
by corwin | 2005/12/08 20:20 | 단상 | 트랙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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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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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산왕 at 2005/12/08 20:26
멋진 글입니다. 이오공감 추천단추가 뜬다면 꾹 누르고 싶은, 그런 글입니다.
Commented by 프리스티 at 2005/12/08 20:31
저도 산왕님처럼 꾹 누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Commented by 바람 at 2005/12/08 21:17
저도요.
하고 싶은 얘기 다 해 주신 것 같은 기분 이예요.
Commented by 트윈드릴 at 2005/12/08 21:37
(daidong입니다.)
프리스티 님 블로그에서 보고 찾아왔습니다. 멋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_ _)
Commented by NanoSwarm at 2005/12/08 22:14
저도 프리스티님 블로그에서 왔습니다. 비록 회원은 아니지만 산왕님과 프리스티님, 바람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건, 가려진 일이겠죠. 어떤 소동에.
Commented by 191970 at 2005/12/09 09:49
corwin님, 멋져요.
Commented by corwin at 2005/12/09 09:59
191970 // 아니, 이거 새삼스럽게...원래 멋지다는 건 아니고...-_-;
Commented by maki at 2005/12/10 13:08
어제 신촌역 내리니까 초라한 시위대가 있더군....금요일 저녁 연말 모임 때문에 쏟아져 오는 인파 속에. 나도 그 인파 중 한 부분이었지.
Commented by young_gean at 2005/12/13 02:19
다소 반듯한 칼럼 형태로 쓰신 글이기에 상당 부분 은유적이라는 것 알지만, 그래도 갠적으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까짓 조금 부끄러워하고나서 앞으론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우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보자,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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