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누
무당을 맡은 여배우의 미모를 생각해서 별 3개를 주신 맑은냇가님의 리뷰. 하지만, 그 배우의 연기를 생각하면 별 1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_-;
<혈의 누>와 집단의 문제
집단성 속에서 실종된 개인에 의구심을 품었으나 [시대]라는 것으로 면죄부를 줘야 할지 고민하시고 계시는 loki님의 리뷰. 하지만, 정작 선비의 딥키스에 더 혼란을 겪으신 듯.
결국은 귀신이 죽였다?
무당의 배후조종설을 피력하신 아리에스님. 멀더가 참 좋아할만한 관점입니다. 씨즐 이벤트 때문에 안보려던 잔인한 영화 1,500원에 보게 되는 고난을 겪게 되셨다고(역시, 싼게 꼭 좋은 건 아니군요.)
빈약한 스릴러, 하지만 그 이상의...
정리되지 못한 현대사를 떠올리며 보신 비욘디님. 역시 공포 영화 매니아답게 닭목 쳐버리는 장면에서 감명을 받으신 듯. 하지만, 닭목을 쳐도 새벽은 오지 않는다구요(의미불명)
중세 속의 근대성, 그 불편한 동거
[근현대사의 원죄의식을 정면으로 비판], [중세적 질서에 살해당한 근대성의 비극], [자유와 평등이 간과된 물질적 근대화], [집권층의 부조리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 어떤 텍스트 속에서도 권력과 계급에 대해서 파헤칠 줄 아시는 ozzyz님 다우신 글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해석하면서 현대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건 ozzyz님일 뿐, 영화는 그 자체는 비판 마져도 <뽀데>를 위해 사용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듭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지만, 애니메이션이 결코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이 영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물론 허술했던 [트로이]에서, 피터 오툴이 브래드 피트를 찾아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의 표정 연기 같은 걸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은 굳어지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혈의 누]는 실사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영화 입니다. 차승원의 대사는 전혀 조절이 안되고 있고, 발성법을 좀 더 연습했어야 하는 지성도 물론 그러하며, 전혀 무당 같이 느껴지지 않게 만든 연기도 그러합니다. 어떤 분들은 박용우의 연기를 칭찬하시는데, 물론 당연합니다. 나머지 연기들이 전부 꽝이니, 평균이라도 한 박용우의 연기가 튈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또한 소설을 무척 좋아하지만, 소설이 가질 수 없는 장점이 영화에 있다고 봅니다. [시네마 천국]을 떠올려 보자구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그 영화가 그토록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을까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처럼 그 음악이 따로 아름답지 않더라도, 장면과 조응이 된다면 소설은 줄 수 없는 종류의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게 영화의 힘이지요. 그런 점에서 또한 [혈의 누]는 역시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사용했던 부분들에서 전 계속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왜 여기서 음악이 나오는거지?"하고 말입니다. 또한, "도대체 여기선 왜 또 음악을 끊는거야?"하고도요. DVD가 나온다면 다시 보면서 체크해 보겠지만, 전 영 납득이 가질 않더군요. 특히나, 선곡의 문제도 있는데, [혈의 누]에서 지겹게 써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정말 안 어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서양음악은 쓰지 말란 말이냐는 아니고, 그렇게 널리 알려진 서양음악을 쓸 필요가 있었던가 하는 점인데.
그리고, 제지소에 관한 문제인데 말입니다. 애초에 전 제지소를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제지소는 조선 말기의 근대성을(그것이 비록 허구였지만) 상징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그 근대성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영화는 사실 근대성이니 자본주의의 맹아니 뭐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더군요. 근대성[제지소]의 출현으로 인해서 대중 자체가 생겨났고, 그 대중이 자본주의의 탐욕에 물들어 저지른 일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다면 영화는 너무 불성실했던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거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않으니까. [말 없는 대중들의 동의]는 제지소가 상징할 뻔했던, 혹은 하려고 했던 근대성과는 무관한게 아닐런지요
.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동학 같이 어떤 참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은 그곳에서 관리가 상징하는 국가 권력에 맞서서 천주교로 몰린 사람을 변호할만한 깜냥을 그 당시 민중들에게 기대한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중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객주 같은 성공한 사람도 천주교 신자로 몰아 모함할 수 있었던 시대, 그 시대에 누가 감히 나서서 그를 변호 할 수 있었겠습니까? 수 많은 실학자들과 남인들이 천주학 쟁이로 몰려 사약을 받거나 귀양을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허술한 구성
1. 살해된 아가씨의 시체는 누가 건졌는가? 벼랑에서 총을 맞고 바다에 떨어진(바닷물 속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영화 초반에 나옵니다.) 그녀를 누가 건져 곱게 모셔둔 걸까요? 박용우? 바닷물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 하는(치아키냐?) 인간이 어떻게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올려놨겠습니까. 가장 가능성이 있는 건 두호가 그랬다 정도로 생각해두는 건데, 영화에서는 그것에 대한 어떤 암시나 설명이 없지요.
너무 졸려서 생각나는 이야기 더 있으면 나중에 또 추가합니다.
무당을 맡은 여배우의 미모를 생각해서 별 3개를 주신 맑은냇가님의 리뷰. 하지만, 그 배우의 연기를 생각하면 별 1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_-;
<혈의 누>와 집단의 문제
집단성 속에서 실종된 개인에 의구심을 품었으나 [시대]라는 것으로 면죄부를 줘야 할지 고민하시고 계시는 loki님의 리뷰. 하지만, 정작 선비의 딥키스에 더 혼란을 겪으신 듯.
결국은 귀신이 죽였다?
무당의 배후조종설을 피력하신 아리에스님. 멀더가 참 좋아할만한 관점입니다. 씨즐 이벤트 때문에 안보려던 잔인한 영화 1,500원에 보게 되는 고난을 겪게 되셨다고(역시, 싼게 꼭 좋은 건 아니군요.)
빈약한 스릴러, 하지만 그 이상의...
정리되지 못한 현대사를 떠올리며 보신 비욘디님. 역시 공포 영화 매니아답게 닭목 쳐버리는 장면에서 감명을 받으신 듯. 하지만, 닭목을 쳐도 새벽은 오지 않는다구요(의미불명)
중세 속의 근대성, 그 불편한 동거
[근현대사의 원죄의식을 정면으로 비판], [중세적 질서에 살해당한 근대성의 비극], [자유와 평등이 간과된 물질적 근대화], [집권층의 부조리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 어떤 텍스트 속에서도 권력과 계급에 대해서 파헤칠 줄 아시는 ozzyz님 다우신 글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해석하면서 현대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건 ozzyz님일 뿐, 영화는 그 자체는 비판 마져도 <뽀데>를 위해 사용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듭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지만, 애니메이션이 결코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이 영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물론 허술했던 [트로이]에서, 피터 오툴이 브래드 피트를 찾아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의 표정 연기 같은 걸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은 굳어지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혈의 누]는 실사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영화 입니다. 차승원의 대사는 전혀 조절이 안되고 있고, 발성법을 좀 더 연습했어야 하는 지성도 물론 그러하며, 전혀 무당 같이 느껴지지 않게 만든 연기도 그러합니다. 어떤 분들은 박용우의 연기를 칭찬하시는데, 물론 당연합니다. 나머지 연기들이 전부 꽝이니, 평균이라도 한 박용우의 연기가 튈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또한 소설을 무척 좋아하지만, 소설이 가질 수 없는 장점이 영화에 있다고 봅니다. [시네마 천국]을 떠올려 보자구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그 영화가 그토록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을까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처럼 그 음악이 따로 아름답지 않더라도, 장면과 조응이 된다면 소설은 줄 수 없는 종류의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게 영화의 힘이지요. 그런 점에서 또한 [혈의 누]는 역시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사용했던 부분들에서 전 계속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왜 여기서 음악이 나오는거지?"하고 말입니다. 또한, "도대체 여기선 왜 또 음악을 끊는거야?"하고도요. DVD가 나온다면 다시 보면서 체크해 보겠지만, 전 영 납득이 가질 않더군요. 특히나, 선곡의 문제도 있는데, [혈의 누]에서 지겹게 써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정말 안 어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서양음악은 쓰지 말란 말이냐는 아니고, 그렇게 널리 알려진 서양음악을 쓸 필요가 있었던가 하는 점인데.
그리고, 제지소에 관한 문제인데 말입니다. 애초에 전 제지소를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제지소는 조선 말기의 근대성을(그것이 비록 허구였지만) 상징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그 근대성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영화는 사실 근대성이니 자본주의의 맹아니 뭐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더군요. 근대성[제지소]의 출현으로 인해서 대중 자체가 생겨났고, 그 대중이 자본주의의 탐욕에 물들어 저지른 일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다면 영화는 너무 불성실했던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거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않으니까. [말 없는 대중들의 동의]는 제지소가 상징할 뻔했던, 혹은 하려고 했던 근대성과는 무관한게 아닐런지요
.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동학 같이 어떤 참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은 그곳에서 관리가 상징하는 국가 권력에 맞서서 천주교로 몰린 사람을 변호할만한 깜냥을 그 당시 민중들에게 기대한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중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객주 같은 성공한 사람도 천주교 신자로 몰아 모함할 수 있었던 시대, 그 시대에 누가 감히 나서서 그를 변호 할 수 있었겠습니까? 수 많은 실학자들과 남인들이 천주학 쟁이로 몰려 사약을 받거나 귀양을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허술한 구성
1. 살해된 아가씨의 시체는 누가 건졌는가? 벼랑에서 총을 맞고 바다에 떨어진(바닷물 속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영화 초반에 나옵니다.) 그녀를 누가 건져 곱게 모셔둔 걸까요? 박용우? 바닷물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 하는(치아키냐?) 인간이 어떻게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올려놨겠습니까. 가장 가능성이 있는 건 두호가 그랬다 정도로 생각해두는 건데, 영화에서는 그것에 대한 어떤 암시나 설명이 없지요.
너무 졸려서 생각나는 이야기 더 있으면 나중에 또 추가합니다.




